가을, 그 짧지만 강렬한 계절은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에서 벗어나 선선한 바람이 불고, 나뭇잎들은 화려한 색깔로 물들어간다. 이런 변화는 우리의 마음속에 숨겨진 시인의 감성을 끌어내며, 누구나 잠시나마 시인이 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며칠 전 서울에 살고 있는 딸 집을 다녀왔다. 모처럼 서울에서 1주일 머물면서 곳곳을 쏘다녔다. 특히 인사동에 가서 그림 전시를 보는 것은 또 다른 행복이었다. 그런데 인사동 가로수에도 벌써 가을이 시작되고 있었다. 가을 바람만 살짝 불어도 낙엽들이 여기저기 굴러 다녔다. 아마 조만간에 이곳 거리는 단풍으로 붉게 물들어 갈 것이다.

역시 가을의 최대 매력은 단풍으로 알록달록 물들어가는 모습이다. 노란 은행잎, 붉은 단풍, 그리고 갈색으로 물든 나무들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우리는 이런 풍경 속에서 시간을 잊고, 감탄하며 발걸음을 멈춘다. 가을 하늘의 맑고 푸른 색깔은 우리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흰 구름이 떠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일상의 소소한 고민들을 잊는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시인이 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감정을 글로 표현하고 싶고,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을 시작과 함께 내 감수성이 확장되는 것이 느껴진다. 요즘 우리집 마당에 피고 지는 여름 끝물의 꽃들과 각종 풀벌레들의 노래 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다. 역시 자연의 소리는 들어도 들어도 물리지 않는 것을 느낀다. 곧 있으면 우리집 화단에도 서리가 내릴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든 식물들은 또 자취를 감출 것이다. 이처럼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자연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시인이 되는 것이다.

물론 시인이 된다고 해서 모두가 시집을 낼 필요는 없다. 감수성의 시인이 되는 것만 해도 충분하니까. 가을은 시간의 태엽이 조금 느리게 가는 것도 느낄 수 있다. 여름철 빠르게 흘러가던 시간도, 가을 시작과 함께 잠시 걸음을 멈춘다. 그 순간 나는 사색의 오솔길을 걷는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다가오는 겨울을 준비하는 과정은 자연스레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는 동시에, 인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사색은 시적 감정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주며, 우리 안에 있는 시인을 깨우는 중요한 동기가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을은 따뜻한 사람들과의 연결을 촉진시킨다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누군가를 불러 차를 함께 마음시고 싶어지는 이유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요즘, 당신도 당신 마음속에 잠들어 있는 시인을 흔들어 깨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글을 정리하고 잠시 창가에 앉아 가을 햇살을 맞으며 지난 수요일 집 앞 서점에서 책을 한 권 구입해 읽고 있는데 이런 문장이 있다.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이자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 그것이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한참이나 이 문장에 눈길을 주면서 나는 이 땅 위에 슬픔을 부둥켜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 올리며 잠시 그들의 슬픔과 내 슬픔이 함께 공명 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올렸다. 하루가 다르게 하늘은 높고 산천은 붉어 가지만 그대를 향한 그리움은 무진장 깊어만 가는 가을, 그 가을이 또 내 곁에서 이렇게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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