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최초의 근대교육자 박희권의 독서처, 매천 황현과 교류하던 곳

숨막힐 듯 괴로운 폭염도 입추가 지나자 새벽 공기에 이불을 끌어당겨야 할 만큼 제법 선선해졌다. 미뤘던 산책을 나서기에 적당한 기온이 됐다.
더위를 핑계 삼아 그동안 미뤄 둔 느릿느릿 걷다 취재를 위해 봉강 거연정으로 간다.
시조, 갓, 도포, 부채, 모시적삼, 막걸리, 낮잠...... 시골길 정자를 지날 때 연상되는 단어들, 거연정은 거기에 역사적 의미를 더 한 곳이라 나선 걸음이 즐겁다.
정자(亭子)는 옛날부터 산수가 좋은 곳에 막힌 곳 없이 기둥과 지붕만으로 건물을 지어 망중한을 즐기는 열린 공간으로 활용돼왔다. 트인 곳이 많아 겨울보다는 여름에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거연정은 봉강면 봉당리 상봉마을에 있는 1898년에 건립된 단층 팔작지붕형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재실형 구조로 돼있다. 광양 최초의 근대교육자 박희권의 독서처와 그의 아들 박홍진이 서당을 개설하고 훈장을 모셔 와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다. 1938년에 그의 후손 박종린(朴鍾麟)과 박종룡(朴鍾龍)이 중건, 정자 오른쪽 암벽에 거연정(居然亭)이라 새긴 후 지금에 이르고 있다. 120여년의 역사를 지닌 거연정은 지난 2015년 2월에 광양시 향토문화유산 제 14호로 지정됐다.
거연정은 구한말 우국지사 매천 황현의 이야기가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매천은 박희권보다 다섯 살 아래로 이곳에서 박희권과 교류하는 등 문우로서의 돈독한 우정을 쌓았다는 후손들의 이야기다. 매천은 ‘거연정기’라는 400여자의 현판 초판을 써주었다.
박희권은 구한말의 문신이자 1905년 을사늑약으로 망국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음독 자결한 우국지사 송병선 선생의 제자로 1906년 사립 광명학교를 설립, 운영했으며 1909년 광양 최초의 서구식 교육기관인 광양서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광양보통학교의 교장을 지낸 광양 최초의 근대교육자로 알려져 있다. 지역에서 동시를 쓰는 박한송 (본명 박판기)시인의 5대 조부다.
박한송 시인은 “거연정 마당 한 켠 암벽에 새겨진 거연정이라는 글씨는 송병선 선생이, 정자 기둥 주련의 글씨는 서예가 송설주 선생이 써준 것이라고 추정만 할 뿐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정확한 고증을 할 수 없어 아쉽다”고 전했다.

김영신 기자  g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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