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봉기 기자>

지난 몇 주간 세종시 문제로 인하여 박근혜와 정몽준 간에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고사성어로 설전이 오갔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미생일까. 미생은 춘추전국시대 사람으로 노나라 태생이다. 미생은 어느 날 다리 아래서 애인을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애인은 오지 않고 소나기가 내려 강물이 불었다. 그러자 미생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몸을 교각에 묶고 끝까지 애인을 기다리다가 결국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정몽준은 이러한 미생의 어리석음을 박근혜에게 빗대어 꼬집었다. 국민과의 약속을 내세워 세종시 원안을 고집하는 박근혜의 모습이 바로 미생의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자 박근혜 측도 발끈하며 나섰다. 약속을 지키다 죽은 미생은 역사의 귀감이 되었지만, 약속을 어긴 애인은 비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물론,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각자의 입장 차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문제는 개인 간의 약속이 아니라, 집단 간의 약속일 때 이야기의 본질은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미생은 참으로 믿음이 가는 사람이다. 죽으면서까지 약속을 지켰으니 말이다. 아니, 요즘처럼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시대에 오히려 미생의 모습을 본받아야 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집단 간의 존폐가 달린 문제를 놓고 볼 때는 이 문제를 다시 재고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는 일단 약속을 했으니 무조건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고집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맞는 말’이라고 해서 다 ‘옳은 말’은 아니라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융통성이 필요한 법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늘 변하는 유기체와 같기 때문이다.

모 위원은 “단군 이래 최대의 대국민 사기극” 에 불과하다고 세종시 수정안 계획을 맹비난했는데 결코 지나친 말은 아니지 싶다. 솔직히 말해 박근혜가 충청도민을 위해 세종시 원칙을 고집한다고 보기보다는 이명박 대통령을 볼모로 한 氣싸움에서 우위를 선점하고자 하는 고도의 정치적 술수라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어쩌면 ‘잘 됐구나’ 싶은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세종시 문제 하나로 인하여 국력소모는 물론이거니와, 각 지자체들이 혼란 속에 빠진다면 달리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당장, 광양시도 향후 도시개발에 막대한 차질을 불러올 공산(公算)이 크다. 아무리 좋은 안건이라도 지역 간의 갈등과 분열을 일으킨다면 백번이고 심사숙고 하는 게 마땅한 일이다. 광양시의회도 세종시 수정안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참으로 시기적절했다고 판단된다. 정부도 진정으로 국가발전을 원한다면 세종시 수정계획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바로 적절한 예산 분배로 균형 잡힌 정책을 실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광양시는 이 문제를 끝까지 예의 주시함은 물론, 향후 발생할 문제까지 철저하게 대비하는 준비성이 필요해 보인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방관 하다가는 우리가 그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홍봉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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