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은 축제의 계절임을 증명하듯 연일 축제 포스터가 나풀거리고 있다. 어제는 송가인이 다녀갔는데 오늘 밤에는 비가 출연하고 내일은 장윤정이 무대에 오른다. 티켓있냐는 말이 바람결에 날아다니지만 나는 삼일 내내 갈 수 없는 사정이 생겼다.

가고 싶은데 못 가면 마음이 아프겠지만 처음부터 마음을 내려놓았기에 크게 아쉽지는 않다. 중학교 2학년 무렵이니 사춘기였나 보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골목이 떠나가라 노래를 불렀다. 스스로 자아도취 되어 구슬프게 불렀다. 드라마 주제곡은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부르다가 울먹이기도 했다.

노래 부르다 지쳐서 화장실에 가려고 나오니 건너방에 세를 살던 어르신이 마루에 앉아 있었다. 내 노래를 다 들은 것 같아 부끄러워 얼굴이 달아올랐다. 깜짝 놀랐지만 태연하게 지나가는데 어르신이 혼잣말로 슬픈 노래 좋아하면 인생이 슬퍼진다고 말했다.

그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여름방학이면 외갓집에서 며칠씩 머물렀는데 혼자라서 심심했다. 지금이야 흔하지만 텔레비전도 없이 저녁을 먹고 평상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세어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할머니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다. 할머니는 모기를 쫓아주며 계집아이가 이야기 좋아하면 사는 게 배고프다고 말하셨다.

노래는 가사를 음미하며 목청껏 불러야 맛이고 이야기의 끝은 서글퍼야 더 감동적인데 어른들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한때 노래방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남자나 여자나 모임 끝에는 노래방이 필수였다. 한잔먹고 난 뒤라 다들 트롯을 부르거나 댄스곡을 부르며 한껏 분위기를 달구는데 꼭 슬픈 노래로 분위기 깨는 애가 있었다.

그런 사람이 바로 나였다. 구슬프고 사연있는 노래를 선곡하다 보니 야단도 많이 맞았다. 한번은 남편 회사 부부 동반 모임에서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를 부르다가 반주가 꺼지는 해프닝이 있었다.

남편은 아무 말 안 하는데 사람들이 난리였다. 어떻게 그런 노래를 부르느냐고 놀렸다. 진짜 애인이라도 있는 것 처럼 내가 그렇게 잘 불렀을까.

너와 나의 삶이 다 똑같으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다. 나는 트롯보다는 발라드나 재즈를 좋아하고 방방 뛰는 음보다는 차분하게 감정을 주고받는 노래를 좋아할 뿐이지만 배우자가 있으면 불러도 되는 노래와 부르면 안 되는 노래로 사람들은 금을 그었다. 그게 교양이고 매너인 것 처럼.

지금은 노래방이 시들해졌는지 자주 가지는 않는다. 어쩌다 가더라도 세월 덕분에 각자의 취향을 개성으로 받아들여 주고 존중해 준다. 지금 내 핸드폰에는 서정적이고 시적인 노랫말이 담긴 대중가요 66곡이 저장되어 있다. 가장 먼저 구입한 노래가 거미의 <죽어도 사랑해>와 장재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었다. 그렇다고 어르신들 말대로 내가 슬픈 인생이었던가.

대중가요의 가사가 ‘말 안 해도 네 맘 다 안다’는 듯 속삭여줄 때 힘이 난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람들의 립 서비스 보다 더 위로받는 느낌이 들 때도 많다. 나는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운전을 하고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한다. 노래는 꽤 괜찮은 인생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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