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파른 언덕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니 참으로 많은 경험을 했구나 하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본다. 인생은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퇴근을 해서 저녁을 먹고 손빨래를 하면서 어머니의 속옷과 내 옷을 번갈아 헹구면서 그 옛날 어머니가 나를 낳으시고 귀저기 빨래를 할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고 상상을 해본다. 어머니 연세, 이제 내년이면 구십이 된다. 망백(望百)을 바라보는 연세가 었다.

어머니의 어린 시절 추억담을 들어 보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연세가 들어서 늦둥이를 보았는데 젖이 부족해서 늘 머리가 아프고 몸이 연약했다고 한다.

진월면 용소마을에서 방죽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나이가 많은 조카들이 고모를 업고 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그런데 옛 말씀에 “골골 30년”이라는 말처럼 어머니는 아직도 나의 아침밥을 챙겨 주신다. 죄송한 마음에 가끔씩 주방에 들어가 반찬을 만들면 짜증을 내시고 내가 나가기를 바라면서 끝까지 옆에서 주방을 지키신다.

어머니와 생활한 지 3년째, 아마 100번도 더 싸웠을 것이다. 싸우는 이유는 너무 하잘 것 없는 것에서 시작한다. “엄마, 간이 너무 짜네요.” “가스 불 이제 끄세요.” “엄마, 요강을 문 앞에 붓지 마세요.” 집 앞에 텃밭이 있어서 오이, 토마토, 상추, 고추를 조금씩 심었는데 아침마다 그 곳에 생 오줌을 부어 하나, 둘씩 시들어 죽어서 어머니께 두 번, 세 번 부탁을 드려도 아침이면 살짝 부어 버리니 이제 몇 그루 남아 있지 않다.

점점 인지능력이 없어지고 세 살 때부터 아프던 머리가 지금까지도 아프지만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해주신 예쁜 주름치마를 입고 외할아버지 손을 잡고 하동 장에 갈 때 부르던 노래를 부를 때면 율동을 하면서 어린아이처럼 천진스럽게 웃으며 노래를 끝까지 다 부르신다.

나는 이제 어머니 기분을 맞추는 기술을 터득하는 중이다. 식사하기 전 1시간 동안은 최대한 기분을 맞추어 세 끼 식사를 꼭 하시도록 한다. 그리고 친구처럼, 연인처럼, 때로는 싸워가며 대화를 길게 이어 나간다. 작은 양이지만 밥 한 공기는 꼭 드시게 한다.

그러면서 서로 웃기도 하고 서로 자기주장이 옳다고 다투기도 한다. 새벽에 일어나면 그날 어머니의 기분이 곧 나의 기분이 된다. 아침에 야속한 말씀을 들으면 다시는 옥룡에 안 올라올까? 하고 마음을 먹다가도 5분도 지나지 않아 옥룡면사무소 앞을 지나면 또 애달픈 마음이 물결처럼 퍼진다.

어머니와 자식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다. 옥룡으로 거처를 옮길 때 나는 백운산에 기도 하였다.
30대 청춘에 홀로 되어서 평생을 4남매를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를 위해 3년의 시간만을 허락해 주신다면 돌아가셔서 시묘살이 3년을 하는 것 보다 살아생전 성심껏 모셔 볼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염원하였다. 백운산은 부족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 주셔서 아직도 잘 드시고 걷는 모습도 허리가 꼿꼿하게 잘 움직이신다.

인생은 운명의 짐을 지고 먼 길을 가야 하는 여정이다. 지게에 지어진 짐이 없다면 그 인생은 의미도 가치도 없을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다짐하고 다짐하며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30년 전 귀향을 결심하고 고향에 들어와 우리 마을 문지기를 하면서 광양을 위해 살고 싶었는데 많은 것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나름 의미있는 일들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할머니를 따르는 늦둥이 막내딸이 대학생이 되어 주름진 바지를 입고 총총걸음으로 학교로 향한다. 부모님이 오래 우리 곁에 계시다는 것은 가정의 역사를 지키며 가족의 대들보가 튼튼하다는 것을 이제 나는 깨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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