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잘 보지는 않지만 어쩌다 우연히 접하게 되는 뉴스를 보고서 놀랄 때가 가끔 있다. 보통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충격적인 사건들을 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복잡한 시대에 수많은 사건ㆍ사고를 각종 미디어나 SNS를 통하여서 쉽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 그러려니 하고 생각해도 도무지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흔히들 하는 말인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 ''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려진다.

그러면서 예전에 가끔 늦게 집에 들어오는 애들에 대해 했던 걱정을 다시금 하게 된다. 세상이 하 수상하니 수시로 나와 가족의 안녕을 챙겨보아야 한다. 그래서 ''안녕하세요?'' 라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일 게다. 누구를 만나든지 묻게 되는 안녕이라는 안부가 여전히 가장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남의 일이라고 듣기만하고 지나치기가 쉽지 않은 그러한 사건들을 듣고서 마음이 몹시 씁쓸함은 느끼는 것은 오늘을 사는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비슷할 듯하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나쁜넘 보다는 착한 이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또한 어쩌다 듣게 되지만 정말로 마음 따스한 소식들도 가끔 있다. 위의 경우와는 정 반대의 이야기라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 ! '' 하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려진다.

서울의 어느 중국집이 아주 특별하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소문이 자자하다. 그 집에는 꼬마 사장 민채가 서빙을 하고 계산도 해주고 잘 가시라고 귀여운 미소의 배꼽인사로 손님들을 보내 드린다.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지 똑순이가 따로 없다. 어찌 꼬마 아가씨가 사장이겠는가? 너무 예쁘게 가게 일을 잘 도와주니 손님들이 그렇게 불러 준다. 꼬마사장 민채는 7살인데 유치원에를 못가서 종일 중국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어느 때부터인가 또래 애들이 다들 가는 어린이집에도 가지 못해 중국집에서 종일 놀면서 커 왔다. 그러길 어느덧 이삼년이 지났다.

손님들이 다 떠나고 한 쪽 테이블에 심심한듯 앉아 있던 민채가 배달을 마치고 돌아와 이제 막 오토바이를 세우려는 배달원에게 다가가 웃으며 또 나무란다 ''또 헬멧을 안 썼네 ! 사고나면 어쩔려구 ! '' '' 아아 ! 그렇네 ! 아빠가 더워서 깜빡 했네. 다음부터는 꼭 쓸게 '' 그러자 민채가 예쁜미소로 웃으며 ''약속'' 하며 새끼 손가락을 내민다. ''그래 약속''

정말로 앙징스러운 딸의 챙김에 아빠의 얼굴은 그냥 환하다. 그러고는 딸바보인 아빠는 민채의 손을 잡고 가게로 들어간다. 그런데 아빠의 얼굴이 너무 젊다. 앳띤 20대로 보이는데 아빠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장난같지도 않아 보인다. 분위기상으로 삼촌이라고 부르는 게 맞는데 말이다. 민채는 사장님의 딸이 아닌 젊은 배달원의 딸인 것이다. 그 아빠가 22살이란다. 22살의 아빠에 7살 딸이라 ! 무슨 사연이 있는 게 분명하다.

민채의 아빠 민혁은 어린시절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고 보육원에서 자라다 15살에 그곳을 뛰쳐나왔다. 여기저기서 일을 하다 보육원에서 친누나처럼 따랐던 시원의 소개로 동갑내기인 채원을 만났다. 채원이 재혼한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집을 나왔다고 하는데 그게 다 배부른 소리처럼 들렸다.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철딱성이 없는 애가 하라는 공부가 하기 싫어 그런 핑계로 가출한 것이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 가셨다는 말에 자기와 엇비슷한 처지라 여겨져 이리저리 챙겨주다 정이 들어 사귀게 되었고 그러다 다음 해에 민채가 태어났다.

아기가 태어나니 출생신고를 해야 했다. 미혼일지라도 성인인 경우는 아이엄마가 출생신고를 하면 되는데 엄마가 미성년자이기에 부모님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엄마 채원이 자기 아버지에게 이러한 사정을 도저히 알릴 수 없다고 하여 출생신고를 할 수가 없었다. 화를 버럭 내실 아버지의 모습에 감히 엄두도 못 냈던 것이다. 가출한 미성년 딸애가 어느 날 갑자기 아기를 낳았다고 연락이 온다면 어느 부모가 쉽게 이해해주고 수긍하겠는가? 그래서 아기의 출생신고를 엄마가 성인이 될 때까지 미룰 수밖에 없었다.

예쁜 민채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잘 키웠지만 감기라도 심하게 들면 큰일이 났다. 당연히 병원엘 데리고 가야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엄마가 미성년자이고 출생신고를 못 했으니 진료를 받으려면 어쩔 수 없이 채원이자기 아버지에게 연락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럴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약국엘 가서 약을 사서 어떻게든 먹였지만 밤새 울며 보채는 갓난애를 바라보는 것이 어린 부모에게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민혁의 보육원 누나인 시원이모가 항상 곁에서 아기와 둘을 챙겨주었다. 하지만 아기의 아빠가 있지만 혼인신고도, 출생신고도 못하는 엄마 채원은 그런 현실을 감당하기가 어려웠고 특히 아기가 아파도 병원엘 데리고 갈 수 없는 현실에는 절망감마저 들었다. 이런 상황을 곁에서 보며 도와주던 시원이모가 아기의 입양을 조심스레 민혁에게 꺼냈다. 당장에 그렇게라도 해야만 할 것 같은 현실이었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보육원에라도 잠시 보내자고 하였다. 그러자 아빠 민혁은 그럴 수 없다고 절대 반대를 하였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기가 아기와 엄마를 돌보겠다고 하였다. 자신이 힘들고 외롭게 커 왔기에 상황이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는 마음뿐이었다.

아빠이지만 중3 정도인 민혁은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했다. 어느날 갑자기 애 어른이 되어있는 자신의 상황을 따져볼 겨를도 없이 신문배달, 전단지 배포, 음식배달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기가 심하게 아파도 병원엘 못가는 형편에 무거운 마음으로 늦게까지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시원 누나가 울고 있는 아기를 안은채 와서 편지 하나를 건넸고 거기에는 민채엄마 채원이 ''민혁아 ! 미안해 ! 내가 용기를 내서 아빠한테 말하면 병원에를 갈 수 있어 쉽게 해결될 문제인데, 난 도저히 아빠한테 말할 자신이 없어. 난, 아직 엄마 될 준비가 안 되었나 봐. 내가 엄마 될 준비가 되면 그때 꼭 돌아올게. 그때까지 아기를 잘 부탁해 '' 라는 내용을 남겨 놓았다.

너무나 당황스러웠고 놀랐지만 이미 채원은 어디론가 떠난 뒤였다. 곧 돌아 올 것이라는 소망에도 혹여나 아기가 아프면 어쩌나하는 마음에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기다렸지만 3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엄마 없이 아기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가 아기를 키우는 것인 것이다. 다행히 엄마의 자리는 시원이모가 채워 주었다. 엄마없는 민채를 돌보기 위하여 조금 떨어진 곳에 살면서 아빠 민혁을 도와주었다. 부모님의 동의가 없어도 아이 엄마가 있으면 출생신고가 가능하다기에 성인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그 날들의 의미가 사라졌다.

민채가 크게 아프지 않고 잘 자라 준 것이 아빠 민혁에게는 너무나 다행이었다. 병원을 갈 수 없으니 말이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도 못 가고 아빠의 일터에서 놀면서 자라온 민채의 소원은 8살이 되는 내년에 친구들이 있는 학교엘 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로 어떻게 해서라도 출생신고를 해야한다. 내년에는 학교를 꼭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중국집 사장님이 휴가비를 챙겨주며 민채엄마를 더는 기다리지 말고 나서서 직접 찾아보라고 한다. 시원이모도 그간 가지고만 있던 민채엄마의 집주소를 건넨다. ''만나면 확 ! 다 말해'' ''아이 ! 누난, 그런 걸 왜 말해'' 무엇을 말하라는 건지 서로의 표정이 다소 심각하다.

다음날 아빠는 민채의 손을 잡고 충남 부여의 채원집으로 갔지만 채원의 아버지는 아예 모른다며 말도 못 꺼내게 한다. 하는 수 없이 돌아서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채원의 사진을 보여주며 수소문하여 겨우 채원이 있는 곳을 알아 낸다. 5년의 세월이 흘러 대학생이 되어 서울에 있다 한다. 다시 민채와 함께 채원의 학교로 가서 만나지만 채원의 마음에는 이미 딸 민채의 흔적이 애써 지워지고 없다.

민혁은 이미 다른 남자랑 팔짱을 끼고 캠퍼스를 걷고 있는 채원을 보고 채원에게 민채의 출생신고만이라도 도와 달라고 통사정하지만 당황한 채원은 놀라며 두 부녀를 자기에게서 애써 밀쳐낸다. 도무지 모르는 일이고 네 딸이니 네가 알아서 키우란다. 이러함에 민혁은 너무나 서러워 참다못해 펑펑 울고 곁에서 지켜보던 민채가 고사리 손으로 아빠의 눈물을 닦아주며 울지 마라 토닥이고 위로한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

그날 저녁, 민채가 집에 돌아온 후 머리에 열이 나고 아프다. 시원이모가 급히 약국에서 약을 사오는데 아마 그렇게도 기다렸던 엄마의 행동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아이엄마가 도와주지 않으면 더 이상의 방법이 없다. 곧 다가오는 민채의 입학식이 얼마 남지 않아서이다. 민채에게 약을 먹이고 방문을 나서던 시원이모가 손에 서류 하나를 들고서는 화가나서 민혁을 조용히 불러내 심각한 표정으로 따진다.

''너 이게 뭐야? '' ''누나, 더는 어쩔 수가 없어'' ''그러게 내가 채원이 한테 다 말 하라고 했잖아''

''아이 ! 누난, 그걸 왜 말해 '' ''알았어 그럼 내가 말할게''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들고 있는 서류를 찢어 버린다. 보육원 관련 서류다. 그렇다. 엄마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보육원으로 보내는 것이다.

다음날 시원이모가 채원이 다니는 학교를 찾아간다. 이번에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말을 내 뱉고 도망치려는 채원의 가방을 빼앗은 시원은 옥신각신하다 잔뜩 화난 목소리로 욕을한다. '' 야 !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민혁이 딸이니 알아서 하라고 ! 민채는 민혁이 딸이 아니야'' 이 말에 채원이 무엇엔가 얻어 맞은듯 잠시 주춤하더니 흐느껴 운다. ''그러니 네가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고. 민혁이는 할 수가 없어. 못 믿겠으면 민채랑 셋이 가서 유전자 검사 해보던가''

그렇다. 민채는 민혁의 친딸이 아니다. 사실 민혁은 힘들게 아기 민채를 키우다 2년 전에

어린이 집에 보내기 위해 출생신고를 하려고 방법을 알아보던 중 재판을 통해서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엄마가 없는 미성년 아빠인 경우에는 부녀관계를 증명할 유전자 검사서가 필요하여 유전자 검사를 하였는데 검사 결과는 불일치로 나왔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나 당황스러웠지만 민혁은 민채가 자기 친딸이 아님을 알고도 변한것은 하나도 없었다.

민채는 여전히 자신의 딸이었고 친부가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았고, 민채를 자기에게 떠맡기고 떠나버린 채원에게 따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 ! 정말로 진짜 사랑이다. 다 큰 어른도 아닌 미성년 아빠가 엄마도 없이 아이를 키우다니 ! 그것도 자신의 친딸이 아님을 알고서도 말이다.

도저히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사랑에 고개가 절로 숙여질 뿐이다. 누구도 흉내 내기 어려운 찐 사랑이다. 자신의 부모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우리 사회에서 민혁같은 이들이 숨은 천사로 살고 있기에 이 각박한 세상이 아직도 따뜻한가 보다. 이런 찐사랑에 어느 누가 감동하지 않으랴.

채원은 늦었지만 다시 민채엄마로 돌아와 주었고 민채는 엄마와 외할아버지가 있는 시골에서 학교를 가게되어 너무나 행복하다. 아기를 떠나 가슴앓이로 5년을 보냈을 채원은 천사인 민혁이 너무나 고맙다. 채원의 아버지도 민혁을 사위로 받아 주었고 빠른 시일 내에 검정고시로 고등졸업장을 딸것을 부탁한다. 방송이 나간 지 10년이 지났으니 꼬마 민채는 지금 예쁜 여고생이 되어 있을게다. 오늘도 어디엔가 있을 또 다른 채원과 민채가 어려운 환경을 잘 극복하고 행복하게 살아주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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