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詩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곤 한다. 그러나 역사를 잠시만 돌아봐도 시는 항상 시대의 아픔과 함께 동행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희한 하게도 사람이 슬픔에 빠지거나 사랑에 빠지게 되면 시인이 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시인이 되거나 아름다운 시를 쓸 수는 없다. 미사여구만 나열한다고 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훌륭한 시인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시대적인 조건이 맞아야하는데 지금 한국 문단에 그런 시인이 한 사람 탄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가 바로 광양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김정진 시인이다.

그는 식물인간 외 4편이 지난 2016년 문학동네 시부분 ‘신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재학 중인 학생이지만 앞으로 한국 문단에 크게 이바지할 기대주로 촉망받고 있다. 반가운 마음에 그와 전화인터뷰를 시도했다.

시를 쓰는 자기만의 특별한 방식이 있는가?
솔직히 그런 방식은 없다. 중고시절에 책을 많이 읽었던 게 시를 쓰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종종 마음에 드는 시를 필사하기도 했는데, 내 시의 뼈대를 세우는데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그러는 동안 시가 뭔지도 알게 됐으며 또한 시적인 운율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됐다. 어떤 글이 됐건 마찬가지겠지만 일단 다양한 시를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물론, 또래 친구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속에서 시의 소재가 생기기도 한다. 그런 뜻에서 시인은 여러 개의 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현대 시에 대해 나름대로 평가를 한다면?
아직은 평가할 단계는 아니지만, 시대가 변하고 또 sns의 발달로 인해 다양한 종류의 시 쓰기가 유행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평론가들은 현대시가 난해하다고 추궁하기도 하지만, 그 이유는 우리들 삶이 그만큼 복잡해지고 있다는 시대적 방증에 다름 아니다. 어떤 시도 시대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그리고 요즘은 동네 소규모 책방도 많아졌고 또 시를 읽고 쓰는 젊은 사람도 많아졌다. 다만, 시가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정신만 훼손되지 않는다면 누구나 시를 쓸 수 있고 또 향유할 수 있다고 본다.

좋아하는 시인이 있다면?
현재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배 시인들을 좋아한다. 음으로 양으로 그분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도 사실이다. 어느 시인이 됐건 그렇게 성장하지 않은 시인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굳이 선택하라고 한다면 기형도 시인, 이성복 시인, 신기석 시인도 내게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사실 내가 국문학이나 문예창작과가 아닌 극작과를 선택한 것도 시와 극이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특히 극 중의 대사는 거의 시적인 상징으로 이뤄져 있는데, 언어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게 되면 시와 공통분모가 참으로 많다.

어떤 시를 추구하고 싶은가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시가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기능에 공을 들이고 싶다. 거창하게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시대의 아픔과 함께 공유하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 물론 그게 설령 연애 시라고 할지라도 그 속에 시대정신을 담고 싶다. 결국 시인이란 타인의 울음을 대신 울어주는 사람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하며 시를 쓰고 있는데,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꾸준히 시를 읽고 있지 않나 싶다.

식물인간 /김정진
꿈에서 나는 꽃을 물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주변은 온통 제 몸을 날리는 것들로 가득하고 나도 중력을 거부한 이름들과 나란히 떠다니고 싶어집니다 벼락을 맞은 나무의 키가 줄어드는 것을 보고 나도 돌이켜 살고 싶어 죽은 나무 구멍에 머리를 들이밀고 숨을 쉬어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삶을 뒤집은 건 내가 아니라 나무였고 나는 아직도 그 안에서 나던 향기를 생각하는 중입니다 홀로 남은 나무마저 어느 순간 몸을 날리게 될까봐 나는 꽃이떨어진 자리마다 우표를 붙여주었습니다 말 못할 슬픔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이 식물로 다시 태어난다는데 또다시 아프게 죽은 식물은 무엇으로 태어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몇 달이 지나고 내 안에 여전히라고 부를 만한 방이 남아 있다면 죽은 나무 산 나무 그 방 안에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휘파람새는 꽃을 따려 손을 내미는 소년의 손가락을 물고 날아갑니다 손가락을 잃은 소년은 자신의 손가락보다 새였던 꽃을 더 그리워하다 마침내는 제 손에 꽃을 피우고 나무가 된다고 합니다 얼마 전 늙은 코끼리 한 마리가 나무 밑에 몸을 뉘었고 코끼리는 시든 식물의 빛깔로 말라갔습니다 나무는 코끼리를 먹어치우고 다시 걸음마를 연습하는 중입니다 손가락을 문 새가 있어 휘파람으로 부르려는데 입을 틀어막는 섬뜩함에 놀라 잠에서 깨어보니 내가 물고 있는 꽃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낙엽들이 살을 베며 지나가고 이제 민들레를 불던 내 입에서도 향기가 납니다 /신인상 시 당선작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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