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에서 눈을 떴을 땐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평소 아픈 적이 없었기에 더욱더 그랬다” 광양에서 비구상 화가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던 고윤숙 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감동을 주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 병상에서 눈을 떴을 땐 망가진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그래서 차라리 그 때 거두어가지 왜 날 살려두었냐고 항의하는 기도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와 그림에 대한 열정은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에너지로 작용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난 날에도 그녀는 지팡이에 의지해 힘겹게 걸음을 옮겼지만 표정은 건강한 사람 이상으로 밝아 보였다.

누구나 당할 수 있다
고윤숙 화가는 민화작가로 활동하는 친구 전시회에 갔다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가게 됐다. 친구의 발빠른 조치 덕분에 목숨은 건질 수 있었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굳어져버린 반쪽 몸이었다. 자신의 몸 반쪽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격심한 절망감을 느꼈다. 처음에는 이게 ‘꿈이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엄연한 현실이었다.

매일 이런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자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평범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일단은 이를 악물고 버텨보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퇴원한 후부터였다. 밖에 나가는 시간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우울증이라는 검은 그림자가 덮쳐오기 시작했던 것.

“정말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가장 심한 고통은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어리석은 이유 중의 하나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뒤에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적은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 그 자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게 됐다” 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광양에는 재활의학과가 하나도 없어
“그런데 정말 안타까운 것은 광양시에는 재활의학과가 한 곳도 없어 뇌졸중환자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순천에는 무려 5곳이나 재활의학과가 있다. 그래서 퇴원한 후에는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순천까지 다녀야 했다. 문제는 순천재활학과에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 중 30%가 광양출신이라는 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광양시는 이 문제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녀는 물리치료 때문에 순천으로 이사를 갈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광양시장에게 직접 편지를 쓰기도 했고 송재천 시의장을 만나 자세히 설명도 했지만 모두 대수롭지 않은 듯한 태도를 보고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고. “광양시가 인구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은데, 약자를 위한 배려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누가 광양시로 이사를 오겠냐. 정말 도시의 품격을 높이려면 도로를 넓히는 게 중요 한 게 아니라 약자의 편의를 먼저 살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광양시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써 향후 광양시가 나와 같은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재활학과를 유치하는 게 광양시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해 보인다”고 누차 강조했다. 이제 그녀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붓을 잡고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물론, 주변 사람들과 따뜻한 눈길을 주고받으며 소박한 행복을 꿈꾸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 날마다 주변 공원을 산책하며 건강과 자신감을 동시에 회복하고 있는 그녀는, 조만간에 더 멋진 작품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올 꿈을 꾸며 힘겨운 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홍봉기 기자  lovein29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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