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가 섬진강변에 향기를 뿌리는 것을 시작으로 전국에 봄이 왔음을 알리고 있다. 매섭던 겨울도 매화꽃 향기가 날아들면 봄을 내 놓는다. 봄엔 뭐니뭐니해도 꽃 소식만큼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것이 없다. 추위에 잔뜩 웅크렸던 어깨를 쭈욱 펴고 섬진강 푸른 공기와 어우러진 청매실농원을 찾았다.

밤 팔러온 시아버지와 인연 시작
밀양에서 태어난 홍쌍리 명인, 8남매에 셋째 딸인데 공부시키면 큰일 난다는 작명가 말을 들은 아버지가 학교를 보내지 않았다.
“우리 집안에서 나만 학교를 안 다녔어요. 딸인데 남자 사주를 타고 났다는 것, 아버지는 열여섯 살 때 작은 작은아버지가 운영하는 국제시장 이화상회에서 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밤 팔려온 시아버지, 나를 주지 않으면 밤을 주지 않겠다며 날마다 얼마나 졸랐는지 그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하게 됐습니다. 시집와서 보니 소달구지도 못 들어오는 88개의 다랭이 산비탈이었어요. 한번은 오빠가 다니려 와서 너무 첩첩 산중이라 목이 메이게 울고 가시더니 ‘67년도에 370만원을 주어 길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도망 안 가기로 약속한 저는 겨울이면 밤나무를 베고 봄이면 매화나무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흙이 밥이요 산천초목 풀들이 반찬, 흐르는 물이 숭늉이었다
처음 해보는 농사일이 쉽지 않았고 남편의 사업실패로 어려워지면서 유일한 낙이 흙과 꽃, 즉 자연이었다,
“그 당시 저는 스모바지에 야전 점퍼만 입고 살았지요. 일하다 매화꽃을 보면서 수없이 눈물도 흘리고 목이 메이면 노래를 지어 불렀지요. ‘외로운 산비탈에 홀로 핀 백합화야, 니 신세나 내 신세나 왜 이리 똑 같노, 니는 향으로 산천을 보듬지만 나는 사람이 그리워서 못 살겠다’ 하고 노래한 것이 시가 됐어요. 외로운 산비탈에 홀로 핀 백합처럼 살기 싫고 사람이 그리워서 내 젊음 다 바쳐 한평생을 흙을 밥으로 하고 농원을 일구며 살았지요.”
흙이 밥이고 산천초목 모든 풀들이 반찬이고 산에서 흐르는 물이 숭늉이었다는 그는 매실농사도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지어야 한다고 고집한다.

청매실농원은 사람이 먹는 식품을 만드는 곳.
홍쌍리 명인은 우리나라 최초로 명인 지정을 받은 매실 명인이다. 매실농축액, 매실김치, 매실음료 등 10여 종의 매실식품을 특산품화했고 땅이 살고 풀이 살아야 인간이 산다는 신념으로 화학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친환경농법으로 매실 농사를 짓는다.
매실은 식중독 예방은 물론 장의 염증도 막고 배 아플 때 특효다. 이런 매실을 어떻게 식탁에 올릴까 연구하다 매실장아찌, 매실고추장, 매실된장은 물론 매실제리, 매실초코렛, 매실 아이스크림 등 30여종의 매실 식품을 개발해 제조법 특허를 받고 전통식품지정업체로 선정됐으며 이런 다양한 업적으로 신지식인 상을 가장 먼저 받았다.

나는‘아름다운 농사꾼’
건강한 식품을 만드는 청매실농원, 6만평이 되다 보니 일이 끝도 없어 내가 우리 집에서 제일 큰 머슴이라며 활짝 웃는 홍쌍리 명인, 고생도 일도 지긋지긋 할텐데 아직도 그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사람이 그리워서 죽고 싶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국문과 공부하지 않는 것, 여자로 태어난 것, 아버지가 농촌으로 시집 보내줘 행복합니다. 그리고 저는 입버릇처럼 매화는 내 딸이요 매실은 내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울타리, 대문이 없고 입장료도 받지 않는 이유는 마음에 문을 열어라. 백 명이 지켜도 한 사람의 도둑은 못 지키는 법, 누구나 와서 꽃을 보고 행복해지라는 뜻이며 많은 사람들과 나눔 하면서 살고 싶단다.
“입장료를 받으면 돈을 벌겠지만 사람은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는 가치가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좋은 사람들과 인연 맺으며 살아가는 것인데 나는 다양한 곳에서 찾아온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 아들 딸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리고 나더러 일 좀 그만하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디 가서 이런 좋은 직장을 구하겠습니까! 자연과 노래할 수 있고 꽃을 볼 수 있어 나는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아름다운 농사꾼이라고 말합니다.”

유열 가수와 함께 만든 CD, 일기 형식으로 쓴 에세이집 출간 준비 중
신지식인 선정, 정부지정 명인 제14호(식품1호) 지정, 대통령상 수상, 국무총리상 수상, 석탑산업훈장, 우수여성발명인상 등 그동안 받은 상이 다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다는 홍쌍리 명인, 섬진강과 흙에 대해 가장 많은 글을 썼다는 그는 매실박사 홍쌍리의 매실 미용 건강이야기(1995년), 매실 아지매 어디서 그리 힘이 나능교(2003년), 홍쌍리의 매실 해독 건강법(2004년), 밥상이 약상이라 했제(2008년), 인생은 파도가 쳐야 재밌제이(2014년)를 출간했다. 그리고 유열 가수와 함께 그동안 써왔던 시가 노래가 되어 CD도 발표할 예정이며 일기 형식으로 쓴 에세이집도 출간 준비 중에 있다. 농사꾼으로 사는 삶이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그는 낮에는 일하는 머슴, 밤에는 글 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청매실농원에서 섬진강을 내려다보면 무릉도원이 부럽지 않아요. 하루 종일 일해 피곤한데도 밤을 꼬박 세우며 글 쓸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그리워 매실나무를 심기 시작했다는 홍쌍리 명인, 이젠 매년 백만 명 넘는 사람들이 찾아와 그가 그토록 바라던 꽃을 보고 노래하며 찾는 무릉도원이다.

매실로 담근 16년산 술이 있는데 그 이름을 ‘맛없는 술’ 이렇게 이름 붙이면 어떨까? 하면서 함박웃음 웃는 홍쌍리 명인, 올해 75세인 그는 인터뷰 하는 시간이 곧 쉬는 시간이지만 일이 하도 많아 마음은 일하는 곳에 있다며 인터뷰를 마치자 마자 새처럼 빠르게 농원으로 달렸다.
매화는 화려함보다는 단아함이, 아름답다는 표현보다는 소박함이 더 어울린다. 청매실농원에 올라 매화꽃 사이로 내려다 보는 섬진강 풍경은 꽃과 산과 강이 한데 어우러져 그야말로 한 폭의 동양화다. 올해 매화축제는 구제역으로 인해 취소 됐지만 매화는 날마다 향기를 내며 피어 오른다. 아름다운 봄 이야기를 간직하고 싶다면, 매혹적인 봄을 만나고 싶다면, 지금 매화마을로 떠날 채비를 하자. 섬진강 꽃 길 따라 꽃 강을 걷다 보면 덧없는 세상 시름 모두 녹아 내릴 것이다.

조경심 기자  g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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